커피의 기원에 관한 종교적 논의(論議)
커피의 기원설에 본격적으로 종교적 해석을 내어놓은 사람이 있다. 국내 이슬람학자인 이희수 교수는 “일부 사람들이 커피의 고향을 에티오피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커피의 고향은 예멘이 맞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커피 원산지가 그리스도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한 예멘이라고 믿는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가 생사를 오갈 때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계시를 받아 커피열매를 따 먹고는 건강을 되찾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무슬림 사이에서는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이는 커피를 무슬림들이 사는 곳곳으로 퍼트리는 힘으로 작용해 커피는 순식간에 ‘이슬람의 음료’인 것처럼 됐다.
종교와 커피
커피가 가장 대중적인 음료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커피가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는 도전과 응전이 언제나 존재했듯이, 커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다. 이번 글을 통해서 세계의 종교들이 어떻게 커피를 자기들의 음료로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가톨릭과 커피
커피 없는 세상. 좀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피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다. 커피가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은 17세기 초반 가톨릭교회, 좀 더 엄밀히 말해 당시 교황의 판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그때 교황이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아마 커피의 위상은 판이했을지 모른다.
커피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커피라는 이름도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 카파에서 유래됐다고 추정된다. 6세기경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침공한 것을 계기로 커피는 아랍지역으로 퍼졌다. 커피 이동의 중심지는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였다. 이후 16세기까지 커피는 이슬람문화권을 대표하는 음료였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16세기 후반, 오스만튀르크와 활발한 무역을 하던 베네치아공화국을 통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유럽과 이슬람권의 아침 모습은 사뭇 달랐다. 유럽 사람이 아침에 맥주를 마셨다면 이슬람권에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유럽에 들어온 커피는 지식인들과 예술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이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맥주와 포도주의 소비량은 줄어들었다. 매출 감소가 이어지자 자연히 기존 시장 체제의 기득권자들의 불만은 높아갔고 이들은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지옥을 연상시키는 악마의 음료” “신이 이교도들에게 포도주를 금한 대신 준 것이 커피이므로 커피를 마시면 사탄에게 영혼을 빼앗긴다” 등 유언비어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급기야 추기경을 비롯해 가톨릭 성직자들은 당시 클레멘스 8세 교황에게 사탄의 음료 커피를 금지시킬 것을 청원했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기 전 교황은 커피를 시음하고 그 맛에 반하게 된다. 음식연구가 심란 세티는 <빵 와인 초콜릿>에 커피를 맛본 교황이 “왜 이 악마의 음료는 이교도만 마시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울 정도로 맛있을까. 우리가 그것에 세례를 주어 진정한 기독교도의 음료로 만들어 악마를 놀려주자”라고 외쳤다고 썼다. 교황의 지지를 얻은 커피는 이후 유럽 전역으로 급격히 퍼져갔다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우유거품을 섞어 만든 뒤 계피나 초콜릿가루를 뿌려 마시는 이 커피는 가톨릭 교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먼저 카푸치노(cappuccino)라는 이름은 카푸친에서 유래했다. 카푸친은 가톨릭 수도회 이름이다.
‘떼루아’(Terroir)와 종교
‘떼루아’란 와인에서 차용한 프랑스어로 ‘커피가 자라나는 거의 모든 환경’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품종의 커피나무를 심어도, 그 나무가 자라나는 흙의 질이나 공기, 바람, 습도 등의 기후나, 심지어 농부의 정성이나 실력이 커피의 맛과 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떼루아가 커피의 맛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종교도 마찬가지로 그 땅의 토양에 따라서 달라진다.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종교가 세계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토착세력의 영향을 수용하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에 따라 변질되기도 하고, 융합하기도 하며, 새롭게 재해석되기도 하였다.
불교가 전파된 중국이나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토착화 시도가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와는 많이 다른 불교가 각 지역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기독교도 전파되는 지역에서 토착화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사실 세계 종교들 치고 토착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종교가 있었던가?
커피가 처음 고향인 에티오피아를 떠나 예멘의 모카에 심겼을 때, 그 땅에서 독특한 예멘 모카커피가 재배될 수 있었다.
커피가 인도 땅에 순례자 ‘바바부단’에 의해 심겼을 때 그 땅에서 인도커피만의 독특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게 되었다.
커피의 품질이 ‘떼루아’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종교도 역시 그 땅의 ‘떼루아’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다른 환경, 다른 토양에 심겨진다고 해도 커피나무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맛이 재해석되어 더욱 풍부해지고 다양해진다.
이처럼 원래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핵심적인 진리와 가치는 변하지 않고, 그 땅의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와 영혼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종교는 마치 비가 온 후에 땅에서 풍겨오는 흙의 향기처럼,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게 될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와 커피
커피가 유럽으로 전파된 것은 1683년 ‘오스만 투르크’의 오스트리아 빈 공방전 때의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빈’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유럽 최초의 카페가 생겼다. 그러나 한 동안 사람들은 커피를 의약품의 일종으로만 알고 있고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커피는 작지만 조용히 유럽 기독교 문명을 흔드는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이슬람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기독교 문화가 수용하는 것에는 상당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며 사회에 혼란을 주는 술이 아닌 대안으로 커피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포도주와 맥주 소비 감소를 걱정한 유럽의 음료업자들은 커피가 '악마의 음료'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급기야 가톨릭 성직자들이 당시 교황인 클레멘스 8세(1536-1605)에게 커피 음용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하기 이르렀다.
그러자 교황은 우선 커피 맛을 보자고 하고, 커피를 마셔본 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악마의 음료라고 하는 게 맛있구나. 그럼 이 음료에 세례를 주어 회개시켜서 악마를 놀려주고 우리의 형제로 만들자"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유럽인들은 교황으로부터 세례 받은 커피를 맘 놓고 마셨고, 급속도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약간의 술은 종교적 감성을 일깨워 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술은 종교적 영성을 감퇴시키며 결국에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는 등 해로운 점이 많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서 지나친 음주를 경계하는 것은 술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력이 부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술과 마찬가지로 커피도 중독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커피의 중독성은 술에 비할 바가 아니며, 커피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아랍의 무슬림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기독교 문화가 수용하는 것에는 상당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며 사회에 혼란을 주는 술보다 나은, 대안으로 커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교와 커피
커피에 필적하는 음료에는 차(茶)가 있다. 종교의 영역에서 보면 차는 불교의 음료였다. 커피에도 ‘칼디’의 전설이 있듯이 차에도 달마의 전설이 있을 정도다.
전설에 의하면 달마가 면벽정진을 각오하며 절대로 잠을 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달마는 육체의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는데, 이에 화가 난 달마가 자기의 두 눈꺼풀을 잘라 땅에 버렸다. 그곳에서 최초의 차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후에 그곳을 지나던 달마가 자라난 차 잎 두 장을 떼어 자기 눈 위에 붙였는데 그것이 눈꺼풀로 변했다고 한다. 찻잎이 눈꺼풀을 닮아서 생긴 전설이라고 생각되는데, 차의 전설 역시 종교와 관계가 있고, 이슬람에서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불교의 영역에서도 차를 대신하여 커피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한국 불교계에서도 이미 커피를 전문가 수준으로 즐기는 스님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커피를 즐기는 수준에서 직접 커피를 볶고 갈아서 마시는 스님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템플 스테이에서 스님들이 차를 내려서 손님들에게 대접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절에서 스님이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하니 커피의 힘이 새삼 놀랍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인들이 커피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은 커피가 지닌 향기와 카페인의 신비로운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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