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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활

풍수가 김위제 : 김위제(金謂磾)는 고려 숙종시절의 술사이다.

by 웃으면 복이 온다 2024.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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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가 김위제 : 김위제(金謂磾)는 고려 숙종시절의 술사이다.

 

풍수가 김위제 생애 및 활동

1907년에 도선의 도참설을 들어 남경 천도를 주청하였고, 1099년 숙종이 친히 남경 지세를 답사케 하여 궁궐까지 짓게 되었다. 그는 남경 천도와 서경 중시의 근거로 36국이 조공해 온다는 비기설을 내세워 예종조에는 서경 용언궁 창건 공사에 참가하였고,인종조의 묘청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과 서경천도론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도선 :  (道詵, 827년 ~ 898년 3월 10일)은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이다.

묘청 : 묘청(妙淸, ? ~ 1135년)은 고려 중기의 승려, 문신이다. 속성(俗姓)과 가계, 출가 도량 등은 전하지 않는다. 1126년 서경파 관료들의 추천으로 인종의 왕사가 되었다. 그는 서경 천도론을 주장했으나 개경파 귀족인 김부식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1135년 칭제건원을 하고 대위국을 수립하였으나 1년만에 진압되었다. 금나라 정벌론과 서경 천도론을 내세웠으나 모두 무산되었고, 평양성의 궁궐 축성과 성곽 개수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개경파에 밀려서 천도론은 무산된다.

 

1097년(숙종 1)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이 되었고, 예종 때에는 주부동정(注簿同正)을 지냈다. 도선(道詵)의 지리도참설을 신봉하고 그 술수를 배웠다.

1097년에 도선의 설과 당시 비기(秘記)로 알려져 있던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신지비사(神誌秘詞)』를 인용하면서 남경(南京: 지금의 서울) 천도를 상소하였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도선기』를 들어, 고려에는 삼경이 있는데, 송악·목멱양(木覓壤: 지금의 서울)·평양이 중경·남경·서경에 해당한다.

그런데 왕이 1년을 3기로 나누어 11∼2월에는 중경에, 3∼6월에는 남경에, 7∼10월에는 서경에 머물면 36국이 조공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답산가(踏山歌)」를 인용하여, 고려는 개국 160년 후에는 목멱양에 도읍을 옮기게 된다는 예언에 따라, 지기(地氣)의 쇠왕(衰旺)을 순주(巡駐)와 이어(移御)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다음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를 들어, 목멱(木覓: 지금의 남산)의 북쪽, 삼각산의 남쪽 평지에 제경(帝京: 서울)을 건립하면 9년 뒤에는 사해가 모두 조공을 바칠 것이라고 주장하여 남경의 지덕이 왕성함을 논하였다.

 

끝으로 『신지비사(神誌秘詞)』를 들어, 삼경은 마치 저울의 극기(極器: 물건을 놓는 곳)·손잡이·추와 같아서, 삼경을 설치하면 70국이 항복하고, 또 남경은 오덕(五德: 水·火·木·金·土)을 두루 갖춘 지역이어서 반드시 여기에 도성을 쌓아 순주해야 하며, 남경 건립은 사직흥망의 관건이라고 역설하였다.

이에 1099년 9월에 이르러 일관(日官) 문상(文象)도 김위제를 지지하자, 드디어 왕이 친히 행차하여 그 지세를 둘러보고 평장사(平章事) 최사추(崔思諏), 지주사(知奏事) 윤관(尹瓘) 등에게 명하여 일을 착수시켜 감독하게 하니, 5년 만에 준공하고, 그 뒤 1101년에는 남경에 개창도감(開創都監)을 두었다.

 

김위제의 풍수지리설과 남경

김위제(金謂磾)는 숙종 1년(1096)에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에 올랐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라는 승려가 당나라로 가서 승려 일행(一行)에게 풍수지리를 배우고 돌아와 비기(秘記)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김위제가 도선의 술법을 공부한 후, 남경 천도를 청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도선기』에는 ‘고려 땅에 세 곳의 수도가 있으니, 송악(松嶽)이 중경(中京), 목멱양(木覓壤) 남경(南京), 평양이 서경이다. 11⋅12⋅1⋅2월은 중경에서, 3~6월은 남경에서, 7~10월은 서경에서 지내면 36개국이 와서 조공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나라를 세운 지 160여 년 후에 목멱양에 도읍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새 수도를 돌아보시고 그곳으로 옮기실 때라고 봅니다.
제가 또 도선의 『답산가(踏山歌)』를 보니 ‘송악이 쇠락한 뒤에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삼동(三冬)의 해 뜨는 곳에 넓은 벌판이 있으니 후대의 어진 사람이 이곳에 도읍하면 한강의 어룡(魚龍)이 사해로 통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동에 해 돋는 곳이란 것은 11월 동짓날에 해 돋는 곳, 즉 동남쪽이며, 목멱산이 송경(松京)의 동남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한강의 북쪽에 도읍하면 왕업이 오래 이어질 것이며 온 천하가 조회하러 모여들어 왕족이 크게 번성할 것이니 실로 대명당(大明堂)의 터입니다.
……(중략)…… 또 『신지비사(神誌秘詞) 』에 이르기를 ‘저울로 비유하자면, 저울대는 부소(扶疎)이며 저울추는 오덕(五德)을 갖춘 땅, 저울접시는 백아강(百牙岡)이다. 이 세 곳에 도읍하면 70개 나라의 조공하여 올 것이고 그 지덕에 힘입어 신성한 기운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울의 머리와 꼬리를 정밀히 하여 수평을 잘 잡으면 나라가 흥하고 태평성대를 보장받을 것이요, 알려준 세 곳에 도읍하지 않는다면 왕업이 쇠퇴하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저울을 가지고 3경을 비유한 것입니다. 저울 접시는 머리요 저울추는 꼬리이며 저울대는 균형을 잡는 곳입니다. 송악을 부소라고 하여 저울대에 비유했으며, 서경은 백아강이라고 하여 저울머리에 비유하고, 삼각산의 남쪽은 오덕을 갖춘 곳으로 저울추에 비유한 것입니다. 오덕(五德)이란 중앙에 면악(面嶽)이 둥근 형태로 토덕(土德), 북쪽의 감악(紺嶽)이 굽은 형태로 수덕(水德), 남쪽의 관악(冠嶽)이 뾰족뾰족한 형태로 화덕(火德), 동쪽의 양주(楊州) 남행산(南行山)은 곧은 형태로 목덕(木德), 서쪽의 수주(樹州) 북악(北嶽)이 네모진 형태로 금덕(金德)을 상징한 것이니, 이 역시 도선 3경의 뜻에 부합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중경 서경은 있으나 남경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삼각산 남쪽, 목면산 북쪽의 평지에 도성을 건설하고 때를 맞추어 순행하시고 머무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진실로 나라의 흥망과 성쇠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에 신은 감히 배척 받을 것을 무릅쓰고 삼가 기록하여 올립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일자(日者) 문상(文象)이 김위제의 의견에 찬동하였고, 또 예종 때 은원중(殷元中)도 도선의 설을 인용해 글을 올려 같은 주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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